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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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오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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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성공의 표준은 '더 높은 곳'과 '더 많은 것'에 매여 있었다. 

우리는 남들보다 높은 자리에 올라서고, 더 견고한 울타리를 치며, 손에 잡히는 수치로 삶을 증명해 내는 것이 삶의 궁극적인 안정과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인생의 화려한 꼭대기에서 마주치는 것은 종종 예상치 못한 서늘한 공허함과 아득한 외로움이다. 

세상의 수많은 권력자와 성공한 이들이 남모르게 영혼의 가증한 허기와 불안에 시달리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성경의 누가복음은 매우 독특한 수신인을 향한 인삿말로 그 웅장한 막을 올린다.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이는 각하가 알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하려 함이라”

— 누가복음 1:3-4

누가는 자신이 목격하고 취재한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복음을 ‘데오빌로 각하’라는 한 인물에게 정성스레 써 내려갔다.  여기서 ‘각하(κράτιστε)’라는 호칭은 당시 로마 사회에서 최고위 공직자나 총독, 혹은 막강한 부와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최상류층 인물에게 붙이던 매우 존귀한 관등명이다.


오늘날로 치면 국가의 통치자, 대기업의 경영자, 사회의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막강한 영향력의 소유자다. 부족함이 없을 것 같은 그 화려한 권력의 중심에 선 이를 향해, 누가는 정무적 조언이나 처세술, 혹은 세상에서 더 성공하는 법을 써 보내지 않았다. 의사였던 누가가 진단한 데오빌로에게 가장 절박하고 시급한 처방은 오직 하나,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었다.


높은 자리가 영혼의 안식을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 세상이 주는 조건은 삶의 외형적 환경을 바꿀 수 있을지언정, 영혼의 근본적인 무게와 죽음의 공포,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마가복음 8:36

아무리 화려한 왕좌에 앉아 있다 한들, 하나님 앞에서는 그저 구원이 필요한 한 명의 가난한 영혼일 뿐이다. 

누가는 데오빌로의 겉모습이 가진 화려한 칭호 뒤에 숨겨진 영적인 빈자리를 보았고, 그곳에 오직 예수라는 진리가 채워져야 함을 알고 있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데오빌로(Θεόφιλος)'라는 이름이 지닌 신학적 의미다. 

하나님을 뜻하는 '테오스(θεός)'와 사랑하는 자 혹은 친구를 뜻하는 '필로스(φίλος)'가 합쳐진 이 이름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 혹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라는 뜻을 품고 있다.

우리는 흔히 성공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이나 도움이 별로 필요 없는 독립적인 존재라 착각하곤 한다. 그러나 복음의 본질은 인간이 스스로를 증명해 내는 데 있지 않고, 하나님이 먼저 내민 손을 잡는 데 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요한일서 4:19


데오빌로는 이미 복음에 대한 소문과 가르침을 어느 정도 들었던 사람이었다. 누가는 그가 어설프게 아는 지식에 머물지 않고,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신 그 역사적 사실과 구원의 은혜를 '더 확실하게(ἀσφάλεια)' 깨닫고 믿기를 바랐다.


우리의 삶을 돌아본다. 우리는 혹시 세상의 눈높이에 눌려 내 주변의 '데오빌로'들을 지나치고 있지는 않은가. 나보다 배운 것이 많아서, 나보다 재산이 많아서, 혹은 나보다 사회적 지위가 높다는 이유만으로 복음이 그들에게는 불필요할 것이라 단정짓지 않았는가. 하지만 성경은 선언한다. 세상의 그 어떤 높은 자리도, 그 어떤 화려한 명예도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인간의 죄성과 허무를 메울 수는 없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로마서 3:23

세상의 가장 높은 곳에 서 있는 '각하'에게도 복음은 필요하며, 오늘 가장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복음은 절실하다.

결국 하나님 앞에서 위대한 삶이란 남들보다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삶이 아니다. 세상의 모든 화려한 직함과 호칭을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무릎 꿇는 한 사람의 영혼으로 서는 삶이다.

내가 서 있는 자리가 가정의 부모이든, 직장의 대표이든, 혹은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치는 지도자의 자리이든 중요치 않다. 진정한 지혜는 내가 쥔 영향력을 내 세력을 확장하는 데 쓰지 않고, 나보다 연약한 이들을 섬기고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데 있다. 세상은 여전히 우리에게 "얼마나 높아졌는가?"를 묻는다. 


그러나 복음은 조용히 우리 영혼의 멱살을 잡고 거꾸로 묻는다. "너는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알고 믿고 있는가?" "각하에게도 복음은 필요합니다." 이 담대한 고백은 2천 년 전 로마의 관료에게만 던져진 메시지가 아니다. 

오늘날 세상의 거대한 성벽 아래에서 위축되어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향한 하나님의 선언이자, 소망의 초청장이다. 천하를 다 얻고도 참된 생명을 얻지 못한다면 아무것도 아니다.  내 손에 쥔 유한한 것들을 내려놓고, 온 우주의 주인 되신 그 분의 사랑 받는 자, 즉 참된 '데오빌로'로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인생이 마주할 수 있는 가장 찬란한 성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