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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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루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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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잘려 나간 것 같은 계절을 통과할 때가 있다. 자랑스럽게 가지를 뻗어 올리던 건강이 무너지고, 평생을 바쳐 일군 사업이 꺾이며, 철석같이 믿었던 관계마저 싹둑 잘려 나가는 순간. 세상은 그것을 가리켜 ‘실패’라 부르고 ‘종말’이라 마침표를 찍는다. 밑동만 덩그러니 남은 삶의 자리는 쓸쓸하고 서늘하다. 

더 이상 그늘을 만들어 줄 잎사귀도, 열매를 맺을 가지도 없기에 더는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는 끝처럼 보인다.


그러나 성경은 베어져 나간 그 절망의 밑동을 향해혀 전혀 다른 이름을 부여한다. 바로 ‘그루터기’다.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이사야 6:13

히브리어로 그루터기를 뜻하는 ‘게자’는 단순한 잔해나 죽은 나무의 시체가 아니다. 그것은 생명이 숨 쉬고 있는 뿌리의 깊은 흔적이자, 하나님의 은혜가 멈추지 않고 흐르는 최후의 보루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의 교만과 거품을 베어내시지만, 결코 뿌리까지 뽑아 버리지는 않으신다. 겉으로 드러난 거대한 외형은 사라졌을지라도, 그 밑바닥에는 하나님이 거룩하게 남겨두신 ‘남은 자’의 생명력이 꿈틀대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언제나 거대한 문명이나 힘센 다수가 아닌, 소수의 ‘남은 자’를 통해 도도히 이어져 왔다. 거대한 인류가 죄악으로 쓰러질 때 하나님은 노아의 작은 한 가정을 그루터기로 삼아 새로운 구원의 날을 열으셨다. 메시아가 이 땅에 오시는 길목에서도 화려한 가문이나 혈통은 중요하지 않았다.

 모압이라는 이방 땅에서 남편과 두 아들을 잃고 완벽히 '잘린 인생'을 살던 과부 룻. 사회적으로 가장 낮고 무력했던 그녀가 낯선 베들레헴의 밭에서 이삭을 주울 때, 하나님은 그 낮은 자리에서 다윗 왕가와 예수 그리스도로 이어지는 거대한 구속사의 싹을 틔우셨다.


우리는 늘 눈에 보이는 웅장함과 화려한 확장에 집착한다. 세상은 "더 크게, 더 많이, 더 강하게"를 외치며 거대한 나무가 되라 부추긴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원리는 다르다. 하나님은 "더 깊게, 더 작게, 마침내 남은 자"를 찾으신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이 베어 나가는 순간, 인간은 비로소 자신의 뿌리가 어디에 내려져 있는가를 돌아보게 된다. 존재의 깊이는 무성한 잎사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땅속 깊은 곳에서 오직 하나님만을 붙드는 신실한 믿음의 뿌리에 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야말로 인류 역사상 가장 처참하게 잘려 나간 그루터기였다. 모든 소망이 끊어지고 무덤이라는 깊은 정적 속에 갇힌 것 같았던 그 자리는, 사흘 만에 부활이라는 거대한 생명의 싹을 피워 올린 거룩한 뿌리가 되었다. 그러므로 삶의 한복판에서 뜻하지 않은 잘림을 경험하고 있다면 낙심할 필요가 없다. 직분과 건강이 잘려 나가 병상에 누워서도 소망을 나누는 한 성도의 고백처럼, "가지와 잎사귀는 베어졌지만 믿음의 뿌리는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루터기는 조용하다. 당장 눈에 보이는 화려한 성과를 자랑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이 남겨두신 그루터기는 결코 죽은 목재가 아니다. 주님의 때가 이르면, 그 작은 잘림의 자리가 구원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생명의 터전이 된다.

오늘 내 삶의 모습이 비록 볼품없이 베어진 밑동에 불과할지라도, 우리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언약은 결코 끝나지 않았다. 잘려도 끝나지 않는 하나님 나라의 신비, 그 거룩한 씨앗을 품은 그루터기로 서서 우리는 또다시 푸른 싹이 피어날 그 아침을 인내로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