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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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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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나님은   예수님을 ‘문’이라고 말씀하셨는가?     ― 문 밖의 인생에서 문 안의 인생으로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여러 모습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다”, “나는 길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요한복음 10장 9절에서는 특별히 “내가 문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예수님은 자신을 ‘문’이라고 하셨을까요?문은 단순한 출입구가 아닙니다. 문을 기준으로 밖과 안이 나뉘고, 동시에 문을 통하여 밖에서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집 밖과 집 안, 성 밖과 성 안, 광야와 가나안이 서로 다르듯이 성경에서 문은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넘어가는 전환점을 의미합니다.
구약에서 성문을 뜻하는 히브리어 샤아르(שַׁעַר, sha'ar)는 단순한 출입구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문은 사람들이 모이고 재판이 이루어지며 중요한 결정이 내려지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문은 한 공동체의 영역과 질서 안으로 들어가는 경계였습니다출애굽기 12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어린양의 피를 문 인방과 좌우 문설주에 바르게 하셨습니다. 그 문은 죽음과 생명의 경계였습니다. 어린양의 피가 있는 집에는 심판이 넘어갔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피를 믿는 사람은 죄와 심판의 자리에서 은혜와 생명의 자리로 옮겨집니다.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0장 9절에서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문’은 헬라어 튀라(θύρα, thyra)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하나님께 나아가는 생명의 입구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신앙은 단순히 예수님에 대해 아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통하여 들어가는 것입니다. 교회의 문을 통과하는 것과 그리스도의 문을 통과하는 것은 다릅니다.그리스도의 문을 통과하면 삶의 주인이 바뀝니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었던 삶에서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삶으로 바뀝니다. 가치관이 달라지고, 삶의 목적이 달라지며,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달라집니다. 베드로가 갈릴리의 어부에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바울이 교회를 박해하던 사람에서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된 것도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그러므로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나는 문 앞에 서 있는가, 아니면 문을 통과했는가?”


교회에 오래 다녔다고 반드시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 지식이 많다고 믿음이 완성되는 것도 아닙니다. 직분을 가지고 있다고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신 것도 아닙니다.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와 주님으로 받아들이고 그분 안으로 들어가는 결단입니다.예수님은 “나는 길이다”라고 말씀하셨을 뿐 아니라 “나는 문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길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목적지에 도착할 수 없듯이, 문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안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문을 통과해야 합니다.오늘도 예수 그리스도라는 문은 열려 있습니다. 문 밖에는 두려움과 죄와 자기중심적인 삶이 있지만, 문 안에는 구원과 은혜와 생명이 있습니다. 문 밖에서는 내가 왕이지만, 문 안에서는 예수님이 왕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은 문 밖에 머무는 믿음이 아니라 문을 통과하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에서 은혜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자기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나아가야 합니다.예수님이 문이십니다.그 문을 통과할 때 새로운 인생이 시작됩니다.문 밖의 인생을 끝내고,오늘 그리스도 안의 인생을 살아갑시다.